레오나르도 다빈치에 대해서는 익히 많이 들어봤으나, 이번 기회에 정말 대단한 화가이면서 과학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10대를 위한 서양미술사'를 읽음으로해서 왜 사람들이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그렇게 위대하다고 평가하는지 알게 되는 기회가 되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작품을 보기 전에 우선 위키피디아 영문판에 나온 소개글을 번역해서 올려본다.
레오나르도 피에로 다 빈치(Piero da Vinci 1452년 4월 15일 – 1519년 5월 2일)는 화가, 도공, 기술자, 과학자, 이론가, 조각가, 건축가로서 활동했던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의 폴리매스입니다. 그의 명성은 처음에는 화가로서의 업적에 집중되었지만, 그는 해부학, 천문학, 식물학, 지도 제작, 회화 및 고생물학을 포함한 다양한 주제에 대한 그림과 노트를 작성한 그의 노트로도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레오나르도는 르네상스 인문학적 이상인 을 전형화한 천재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그의 수집적인 작품들은 23년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의 젊은 동시대 예술가들과 필적하는 후세의 예술가들에 대한 공헌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책에서 첫번째로 소개된 그림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스승인 베로키오의 그림에 함부로 손을 대서 결국 멋진 그림으로 만들게 된 작품입니다.스승인 레로키오는 화를 내지않고 격려를 해주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림이 마치 새 생명을 얻은 것처럼 바뀌었습니다. 그림 속의 두 천사와 세례를 받고 있는 예수의 발목을 스치는 투명한 물살 그리고 뒤쪽 배경의 일부가 바로 다빈치의 솜씨입니다.
영문판 위키피디아에 있는 그림을 올리는 것인데, 책에서 보는 것과 다르게 더 생동감이 넘친다.
다빈치는 불우한 어릴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고아처럼 버려져 할아버지의 보살핌 아래 어린 시절을 보냈고, 변변한 교육도 제대로 못받았다고 합니다. 다빈치는 서른 즈음에 피렌체를 떠나서 밀라노로 갔다고 합니다. 밀라노의 스포르차 궁정에서 서른 해 가까이 봉직하면서 궁정의 수석 예술가로, 병장기 엔지니어로 활약했다고 합니다.
위 그림은 흰 담비를 안고 있는 '체칠리아 갈레라니의 초상'이라는 그림으로 밀라노에서 살던 시기에 그렸다고 합니다.
배경을 검은색으로 처리해서, 인체가 마치 부조처럼 바닥면에서 튀어나온 느낌을 주는 아름다운 작품이지요. 다빈치는 회화가 조각을 본보기로 삼아 배워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부조처럼 실물감이 살아나는 그림을 으뜸으로 쳤지요.
'체칠리아 갈레라니의 초상'은 다빈치의 '부조 이론'이 가장 잘 드러나는 작품이라고 합니다.
위 그림은 '광야의 성 히에로니무스'라고 하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작품이다. 로마의 바티칸 미술관에 있다고 하는데, 미완성 작품이고, 큼직한 돌멩이를 들고 있는 성인의 오른쪽 팔 하나가 거의 완성된 상태로 남아 있는 작품이라고 한다. 근육과 골격의 형태가 멋지긴 하다.
누구나 알고 있는 작품인 레오나르도 다빈치 최후의 만찬, 모나리자 작품 올려본다.
밀라노 산타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교회에 있는 '최후의 만찬'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모나리자'이다.
모나리자가 짓는 미소 그리고 최후의 만찬 식탁에 앉아 있는 제자들의 표정, 손짓, 몸동작, 옷 주름은 모두 숙련된 자연관찰의 결과입니다. 식탁 자리에 배반자가 있다는 예수의 말에 당황하며 어쩔 줄 모르는 제자들의 반응을 다빈치는 자연과학자의 예리한 눈으로 포착합니다. 미술은 문학이나 음악보다 뛰어난 인류 공통의 만능 언어이며, 붓으로 표현하지 못할 것이 없다는 신념을 그림에 표현했어요.
제일 유명한 두 작품에 대한 설명이라서 그대로 옮겨보았다.
그리고,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기계 발명품도 많다고 한다. 특히나 비행기계를 만들려는 시도는 정말 미처 알지 못했던 이야기였다. 이탈리아 로마 국제공항 이름이 '레오나르도 다빈치 공항'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배경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다빈치가 그린 '비투루비우스의 인체비례'는 자신의 척도로 우주의 비밀을 밝히려 한 위대한 여정의 첫걸음을 보여주었다고 한다.